도시노미야 아이코, 서글픈 공주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의 왕가에 대해서 곱게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하물며 공주인 도시노미야 아이코에 대한 감정도 좋을리가 만무하겠죠.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빼고 보면 참 도시노미야 아이코는 서글픈 공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1. 왕자를 바랬건만...

마사코 태자비와 나루히토 태자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몇번의 유산 끝에 2001년에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의 성별을 직접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은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며 거절하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일본은 아들의 탄생을 바랬지만 2001년 12월 1일에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2. 일본은 적통이 필요하다..

일본 왕실은 여계 계승이 원칙적으로 금지가 되어있습니다. 아들(적통)이 필요했지만 딸이 태어 났으니 얼마나 눈치를 받았겠어요? 스트레스로 인하여 임신은 더이상 되지 않았고 이후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여성의 왕위 승계를 허용하도록 개정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3. 하지만 결국 아들은 태어나고..

하지만 일본 왕실에는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아이는 나루히토 태자의 아이가 아니라 동생인 후미히토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여자의 왕위 승계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시도는 무산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노미아 아이코는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죠.

4. 아이코의 성격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코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었을것 같습니다. 매스컴에서 보인 아이코는 언제나 뚱한 얼굴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폐증'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또한 외모가 아버지를 너무 닮아서 예쁘지 않은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5. 아이코 이지매 사건

성격때문인지 초등학교 생활도 순탄치 못했습니다. 황태자의 무남독녀인 아이코가 급우로부터 집단이지매를 당한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코는 5일동안이나 등교를 거부하였고, 일본 왕실은 뒤집히고 말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사코 태자비는 2년동안 동반으로 등교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6. 달라진 모습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 전까지는 아이코의 인터뷰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는데 중학교 입학식때 본인의 입으로 인터뷰를 하였기 때문이지요. 기자들이 아이코에게 기분이 어떠세요? 라고 묻자 아이코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죠. 엄마인 마사코 태자비가 대답해도 좋아요. 라고 속삭인 후에야 처음으로 크게 기대됩니다! 라고 한게 전환의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7. 이제는..

아이코 공주는 성장을 하면서 계속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적도 매우 훌륭해서 어머니인 마사코 태자비의 목을 꼿꼿하게 세워주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언론에서 연일 아이코 공주의 성적에 대해서 연일 칭찬을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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